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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3장 8절 말씀 묵상 - 일어나 걷고 뛰며 찬양

"뛰어 일어나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에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태어날 때부터 한 번도 걸어본 적 없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마흔 해가 넘도록 성전 미문 앞에 앉아 구걸하며 살아온 그에게, 어느 날 베드로의 손이 내밀어졌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 선언은 단순한 치유의 말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구걸의 자리에서 찬송의 자리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헬라어 본문에서 이 절은 세 가지 동사가 연이어 터져 나옵니다. ἐξαλλόμενος(엑살로메노스, '뛰어오르다'), ἔστη(에스테, '굳게 서다'), περιεπάτει(페리에파테이, '걸어 다니다'). 이 세 동사는 단순한 신체 동작이 아니라 한 영혼의 회복을 보여주는 영적 순서입니다. 은혜를 받은 자는 먼저 '뛰어오르고', 그 다음 '굳게 서며', 그리고 '걷기 시작합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회복은 조심스럽고 더딘 것이 아니라 폭발적이고 충만합니다.

히브리적 사유 안에서 '걷는다'는 것은 곧 삶의 방식, הֲלָכָה(할라카, '가는 길, 삶의 방식')를 의미합니다. 이 사람은 단지 다리를 쓰게 된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삶의 방향을 얻은 것입니다. 그는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예전에는 성전 문 밖에서 구걸하던 그가 이제는 성전 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은혜는 우리를 문 밖에서 문 안으로 데려옵니다.

오늘 우리 성도의 삶 안에도 '미문 앞'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낫지 않는 상처, 반복되는 실패, 스스로를 가두어 온 체념의 자리입니다. 성령께서는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를 일으키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은과 금, 더 많은 인간적 자원이 아닙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그 이름 안에는 죽은 자도 살리시는 부활의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베드로와 요한의 손을 잡고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진 회복이었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홀로 이루어지는 신비 체험이 아니라, 함께 손 잡고 성전을 향해 걸어가는 공동체적 사건입니다. 진주충만교회 성도들도 서로의 손을 잡아 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옆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제자매의 손을 붙드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했다는 마지막 장면은 이 본문의 절정입니다. 찬송은 억지로 드리는 의무가 아니라, 은혜를 경험한 자에게서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생명의 반응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충만히 역사하실 때, 우리의 입술은 저절로 열립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 서서 우리 각자의 미문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우리를 일으키신 주님께 다시 한 번, 온 마음으로 찬양을 올려 드립시다.

말씀 묵상에 대한 질문:

1. 나의 삶에서 '미문 앞'처럼 오랫동안 머물러 온 자리가 있다면 어디입니까? 그 자리에서 주님의 이름을 의지한 경험이 있으십니까?

2. 이 사람의 회복은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나는 주변에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체의 손을 붙들어 준 적이 있습니까?

3. 마지막으로 억누를 수 없는 감사와 찬양이 마음에서 터져 나왔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오늘 그 회복의 기쁨을 다시 경험하고 싶으십니까?

기도합시다:

살아계신 주님, 오랜 세월 미문 앞에 앉아 있던 그 사람을 일으키신 것처럼, 오늘 이 말씀 앞에 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으켜 주시옵소서. 체념과 두려움의 자리에서 벗어나 성전 안으로, 찬양의 자리로 우리를 이끄시는 성령님을 신뢰하며, 손과 발을 굳게 하여 오늘도 주님의 길을 담대히 걷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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