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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9장 7절 말씀 묵상 - 기쁨으로 드리는 삶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헌신의 문제는 언제나 손이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헌금을 권면하면서 단 한 번도 금액을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한 가지를 물었습니다. "당신의 마음은 어떠합니까?" 이 짧은 물음 속에 하나님 나라의 경제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드리는 것의 크기보다 드리는 마음의 온도를 보십니다.

헬라어 원문에서 "즐겨 내는 자"는 ἱλαρὸν δότην (힐라론 도텐)으로 표현됩니다. '힐라론(ἱλαρόν)'은 단순한 기쁨이 아닌 빛나는 명랑함, 내면에서 흘러넘치는 생동하는 기쁨을 뜻합니다. 영어 단어 'hilarious(유쾌한)'가 여기서 유래했을 만큼, 이 기쁨은 억누를 수 없는 생명력을 지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드림은 바로 이 힐라론의 드림입니다. 의무감에서 나온 드림이 아니라, 은혜를 깨달은 자의 자발적이고 기쁜 반응입니다.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라"는 말씀에서 두 가지 잘못된 드림의 동기가 드러납니다. 히브리어적 사고 전통에서 인색함은 צָרוּת עַיִן (차루트 아인), 곧 '눈이 좁음'을 뜻합니다. 시야가 좁아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보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억지로 드리는 것은 강박이며, 그것은 예배가 아니라 거래입니다. 성도의 드림은 두려움이나 체면에서 나와서는 안 됩니다.

바울이 이 권면을 쓰던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극심한 가난과 핍박 중에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상대적으로 풍요로웠습니다. 바울은 이 불균형을 교회의 아름다운 연대로 채우려 했습니다. 드림은 단순한 물질의 이동이 아니라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우리의 드림도 오늘 누군가의 무너진 하루를 붙들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오늘도 성도의 마음에 이 힐라론의 기쁨을 부어 주십니다. 그 기쁨은 내가 얼마나 여유 있는가에서 오지 않습니다. 내가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는가를 아는 데서 옵니다. 십자가 앞에 서면 우리는 모두 무한한 빚진 자입니다. 그 빚을 아는 자는 드리는 것이 아깝지 않습니다. 오히려 드릴 수 있음이 특권이 됩니다.

진주충만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나의 드림을 점검해 보십시오. 예배의 헌금만이 아닙니다. 시간을 드림, 재능을 드림, 관심과 기도를 드림 -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제사입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라는 말씀은 성도 각자에게 드림의 자유와 책임을 동시에 맡기시는 하나님의 신뢰입니다. 그 신뢰에 힐라론의 마음으로 응답하는 오늘이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 묵상에 대한 질문:

1. 나는 최근 무언가를 드릴 때 그 동기가 기쁨이었습니까, 아니면 의무감이나 체면이었습니까? 그 차이가 나의 마음과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2.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에서 '사랑하신다'는 표현이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나의 드림의 이유가 될 수 있습니까?

3. 물질 외에 내가 하나님과 이웃에게 기쁨으로 드릴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한 가지를 구체적으로 실천한다면 무엇이겠습니까?

기도합시다:

은혜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저희가 받은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날마다 새롭게 깨달아, 드리는 삶이 부담이 아닌 기쁨이 되게 하시고, 성령의 힐라론으로 충만하여 물질과 시간과 마음을 주님과 이웃 앞에 활짝 열어 드리게 하여 주옵소서.
인색함과 억지의 영을 몰아내시고, 십자가의 사랑을 바라볼 때마다 더 드리고 싶은 마음이 솟아오르게 하시사 저희의 드림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아름다운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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