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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3장 13-14절 말씀 묵상 - 온전한 사랑의 옷을 입으라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받은 성도의 삶은 단순한 도덕적 수련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구원의 현실을 날마다 삶의 옷으로 입어가는 여정입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3장에서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처럼"(골 3:12) 옷 입으라 권면한 후, 그 삶의 절정으로 용납과 용서와 사랑을 제시합니다. 이 세 가지는 따로 떼어낼 수 없는 하나의 흐름입니다.

먼저,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이라는 표현은 현실 공동체의 솔직한 묘사입니다. 헬라어 원문에서 μομφή(몸페, '불만', '원망')는 실제로 상처받은 감정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그 감정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도, 가정 안에도, 오랜 신앙의 관계 안에도 상처와 갈등은 존재합니다. 성령께서는 그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그 감정을 들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분명히 가르쳐 주십니다.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에서 용납은 헬라어 ἀνεχόμενοι(아네코메노이, '참다', '견디다')이며, 용서는 χαριζόμενοι(카리조메노이)로 '은혜를 베풀다'는 뜻입니다. 즉, 용서는 상대방이 자격이 있어서 주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값없이 주는 것입니다. 히브리적 사유로는 סָלַח(살라흐), 곧 하나님께서만 온전히 행하실 수 있는 용서를 인간이 그 은혜 안에서 나누는 것입니다.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이 말씀은 우리 용서의 근거가 우리 감정이나 의지가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 은혜임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명합니다. 헬라어로 ἀγάπη(아가페)는 감정이 아니라 선택이며, 희생입니다. "온전하게 매는 띠"에서 σύνδεσμος τῆς τελειότητος(신데스모스 테스 텔레이오테토스)는 '완전함의 묶는 끈'이라는 뜻으로, 사랑이 모든 덕목을 하나로 묶어 완성시키는 역할을 함을 보여줍니다. 사랑이 없으면 용납도 형식이 되고, 용서도 조건부가 됩니다. 사랑만이 그 모든 것을 진정성 있게 붙들어 줍니다.

성도의 공동체가 세상과 달라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은 상처를 기억으로 쌓지만, 성도는 은혜를 기억으로 삽니다. 세상은 자격 있는 자에게 친절하지만, 성도는 자격 없는 자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흘려보냅니다. 이것이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삶의 독특한 아름다움입니다. 공동체 안에 사랑의 띠가 매어질 때, 그 교회는 세상 앞에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증거가 됩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 서십시오. 마음 한켠에 아직 풀리지 않은 불만이 있습니까? 은혜로 받은 용서를 이웃에게 흘려보내지 못한 채 붙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성령을 통해 우리를 설득하고 계십니다—사랑의 옷을 입으라고, 그것이 우리의 본래 부름임을 기억하라고.

말씀 묵상에 대한 질문:

1. 지금 나의 삶 속에서 용납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그 어려움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주님 앞에 솔직하게 나누어 보십시오.

2. "주께서 용서하신 것 같이"라는 말씀이 내 용서의 기준이 되고 있는지, 아니면 여전히 나의 감정과 조건이 기준이 되고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3. 내가 속한 공동체(가정, 교회, 직장)에서 사랑의 띠가 되어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기도합시다:

주님, 저희가 받은 은혜의 크기를 날마다 기억하게 하시고, 그 은혜로 이웃을 용납하고 용서하며 사랑의 띠로 공동체를 하나 되게 하는 성도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주께서 먼저 저희를 사랑하셨음을 믿사오니, 그 사랑이 저희 삶 전체를 온전히 붙들어 주시도록 성령 충만함을 날마다 부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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