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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4장 8절 칼럼 - 사랑이 곧 하나님이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사람들은 종종 "하나님이 사랑을 하신다"고 말한다. 그런데 성경은 그보다 훨씬 더 깊은 진리를 선언한다. 하나님은 사랑을 하시는 분이 아니라, 사랑 이신 분이다. 요한일서 4장 8절의 헬라어 원문은 "ὁ θεὸς ἀγάπη ἐστίν(호 떼오스 아가페 에스틴)"이라고 기록한다. 여기서 '아가페(ἀγάπη)'는 단순한 감정이나 호감이 아니라, 조건 없이 주는 사랑, 희생으로 완성되는 사랑을 뜻한다.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가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 그 자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사랑을 어디서 확인할 수 있을까. 바로 십자가다. 로마서 5장 8절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말씀한다. 우리가 선해서, 우리가 먼저 사랑해서가 아니다. 아무런 자격 없는 우리를 향해 먼저 손 내미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가페다. 이 사랑은 인간의 논리로는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사랑이다.

요한은 이 구절 바로 앞에서 날카로운 말을 던진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여기서 '안다'는 말은 히브리어 개념인 '야다(יָדַע, 야다아)'와 맞닿아 있는데,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깊은 관계적 앎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을 머리로 아는 것과 삶으로 아는 것은 다르다. 사랑하지 않는 삶은, 아무리 신학을 알아도 하나님과 무관한 삶이 될 수 있다는 엄중한 경고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쓰면서도, 가장 사랑에 굶주린 시대다. 조건부 사랑, 이익에 따른 사랑, 상처 주는 사랑이 넘쳐난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다르다. 요한일서 4장 9절은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고 선언한다. 그 사랑은 살리는 사랑이다. 상처 입히는 것이 아니라 회복시키는 사랑이다.

성도의 삶은 이 사랑을 받은 자로서, 그 사랑을 흘려보내는 삶이어야 한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가정 안에서,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아가페를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아는 자의 증거다. 사랑은 구호가 아니라 일상이다. 말이 아니라 행동이고, 감정이 아니라 선택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형제를 미워한다면, 그 고백은 공허한 말에 불과하다고 요한은 단호하게 지적한다(요일 4:20).

오늘, 한 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 살고 있는가. 내 삶의 반경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아가페의 온기를 전하고 있는가.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진리는 교리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그 사랑 안에 거하는 자가, 비로소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다(요일 4:16).

칼럼에 대한 질문:

1. 나는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삶으로 '경험하고' 있는가? 그 차이가 내 일상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

2. 내가 실천하는 사랑이 조건부 사랑인지, 아니면 아가페에 가까운 사랑인지 돌아볼 때 어떤 점이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가?

3. 교회 공동체와 가정 안에서 '사랑이 곧 하나님'이라는 진리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려면 오늘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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