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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편 5절 강해 설교 -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눈길

제목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눈길
본문: 시편 11편 5절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시편 11편의 말씀을 통해 우리를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시선을 마주합니다. 다윗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위기 상황에서 "새 같이 산으로 도망하라"는 주변의 권고를 받습니다. 세상의 기초가 무너지는 것 같은 두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도망치지 않고 성전에 계신 여호와께 피하는 길을 택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하늘 보좌에서 인생을 통촉하시고 감찰하고 계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5절은 하나님이 단순히 방관하시는 분이 아니라, 의인과 악인을 명확히 구별하시고 그분의 뜻대로 개입하시는 분임을 선포합니다. 이 시간, 우리를 단련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1. 의인을 단련하시는 하나님 (5절 상반절)

본문 상반절에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감찰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브한(yibchan)'은 단순히 눈으로 본다는 뜻을 넘어섭니다. 이는 금속을 제련하여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도를 시험한다는 '단련하다(test, try)'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의인에게 허락하시는 고난과 시련은 그를 버리신 증거가 아니라, 그를 정금과 같이 빚어내시기 위한 하나님의 적극적인 사랑과 관심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의인을 주목하시되, 그 믿음이 참된 것인지 입증하시고 성숙하게 하십니다.

-관주: 이러한 하나님의 시험과 단련은 구약 욥기 23장 10절에서 욥의 고백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욥은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도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고 선포했습니다. 또한 신약 야고보서 1장 12절은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진리는, 하나님의 감찰하심은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거룩한 백성으로 완성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적용: 성도 여러분, 지금 이해할 수 없는 시련의 불꽃 가운데 계십니까? 하나님이 나를 잊으신 것 같아 두려우십니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지금 당신을 감찰하고 계십니다. 대장장이가 쇠를 불에 달구고 두드리는 것은 쓸모없는 쇠붙이라서가 아니라, 귀한 도구로 쓰기 위함입니다. 고난을 하나님의 거룩한 만지심으로 받아들이고 인내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2. 폭력을 미워하시는 거룩한 성품 (5절 하반절)

이어지는 하반절은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서 '미워하다'는 감정적인 싫어함을 넘어,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Nature)이 죄악과 양립할 수 없음을 나타냅니다. 특히 '폭력(하마스, chamas)'을 좋아하는 자를 지목하십니다. 이는 물리적인 폭력뿐만 아니라, 타인의 인격을 짓밟고 억압하며 착취하는 모든 불의한 태도를 포함합니다. 하나님은 악인의 번영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그들의 행위를 혐오하십니다.

-관주: 잠언 6장 16절에서 19절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합니다. 교만한 눈, 거짓된 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 등입니다. 선지자 하박국 역시 하박국 1장 13절에서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신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악을 단순히 방관하는 분이 아니라, 당신의 거룩한 이름과 영광을 위하여 악을 대적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자들을 향해 거룩한 분노를 표출하셨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적용: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죄와 타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은 내 안에 타인을 향한 미움과 언어적 폭력, 무시와 멸시가 자리 잡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결교회 성도인 우리는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함께 미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안의 숨은 폭력성을 회개하고, 십자가의 보혈로 정결함을 입어야 합니다.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본분입니다.

3. 궁극적인 심판과 구원의 확신 (5-7절 문맥)

5절은 독립된 구절이 아니라 6절과 7절로 이어지는 심판과 구원의 서막입니다. 하나님이 악인을 미워하시기에 그 결과로 6절에서는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그들의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반면 7절에서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라고 약속합니다. 하나님의 감찰하심은 결국 의인에게는 하나님을 대면하는 축복으로, 악인에게는 피할 수 없는 심판으로 귀결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세상의 위협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아야 할 이유입니다.

-관주: 이러한 종말론적 대조는 갈라디아서 6장 7절의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어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는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22장 11-12절은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는 말씀과 함께 각 사람에게 일한 대로 갚아 주시겠다는 주님의 재림 약속을 보여줍니다. 의인의 궁극적 소망은 이 땅의 영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것(Visio Dei)에 있습니다.

-적용: 세상이 악해지고 폭력이 난무할수록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공의를 신뢰해야 합니다.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잠시뿐입니다. 우리의 시선을 오직 하나님께 고정합시다. 하나님은 의로운 삶을 추구하는 자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정직하고 성결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맺는말[Conclusio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시편 11편 5절 말씀은 우리에게 두 가지 분명한 영적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첫째, 하나님은 의인을 감찰하시고 단련하십니다. 때로 우리 삶에 찾아오는 고난과 시련은 우리를 망가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정금같이 연단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중에도 낙심하지 말고, 나를 주목하고 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인내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악과 폭력을 미워하시며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세상이 아무리 혼란스럽고 악인이 득세하는 것처럼 보여도,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공의의 저울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핵심 가치인 '성결'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악을 버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를 따르는 삶입니다. 의로우신 여호와는 정직한 자에게 당신의 얼굴을 보이십니다. 한 주간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감찰하시는 눈길 앞에서 두려움과 떨림으로, 그러나 기쁨과 감사로 거룩한 삶을 살아내는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에 대한 질문:

1.  본문에서 '감찰하신다(이브한)'는 단어는 단순한 관찰과 어떻게 다르며, 이것이 고난받는 성도에게 어떤 위로가 됩니까?

2.  하나님이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미워하신다고 할 때, 오늘날 우리 삶에서 경계해야 할 '폭력'의 형태는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3.  다윗은 위기 상황에서 도망치라는 조언을 거절했습니다. 본문의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어떻게 그런 담대함을 가능하게 했습니까?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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