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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32장 27절 강해 설교 -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의 주권

제목: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의 주권
본문: 예레미야 32장 27절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절망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본문의 배경이 되는 예레미야 32장은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던, 국가적 멸망이 임박한 시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감옥에 갇힌 예레미야에게 뜬금없이 "밭을 사라"고 명하십니다. 곧 빼앗길 땅을 사는 것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예레미야조차 이 명령 앞에서 혼란스러워할 때,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을 통해 당신이 누구신지 명확하게 선포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1: 언약의 하나님, 창조의 하나님 (27절 상반절)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두 가지 호칭으로 소개하십니다. 첫째, "나는 여호와요"입니다. 이는 스스로 계신 자이며,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신실하신 하나님임을 상기시킵니다. 둘째,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육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사르(basar)'는 연약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피조물의 한계성을 내포합니다. 즉, 하나님은 영원하고 전능하신 창조주이시지만, 인간은 한 줌의 흙과 같은 연약한 존재임을 대조적으로 보여줍니다. 모든 생명의 호흡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관주: 이 말씀은 민수기 16장 22절과 27장 16절에서 모세가 고백한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라는 표현과 맥을 같이 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반역 상황이나 후계자를 세우는 결정적인 순간에,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호소했습니다. 또한 이사야 40장 6절은 "모든 육체는 풀이요"라고 말하며 인간의 유한함을 강조합니다. 성경은 일관되게 인간은 연약한 '육체'일 뿐이며, 오직 하나님만이 그 육체를 통치하시는 절대 주권자이심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적용: 우리는 종종 나의 연약함과 환경의 어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한계 속에 갇히는 분이 아닙니다. 혹시 내 육체의 질병, 재정의 결핍, 관계의 단절 앞에서 절망하고 계십니까? "나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는 선포가 나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연약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일하기 시작합니다.

2: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전능성 (27절 하반절)

하나님께서는 수사 의문문을 던지십니다.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 히브리어 원문에서 '할 수 없는 일'은 '팔라(pala)'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너무 어려워서 불가능한 일' 혹은 '기이하고 놀라운 일'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네가 보기에 이 상황에서 밭을 사는 것이 어리석고 불가능해 보이나, 나에게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정보가 필요해서 묻는 것이 아니라, 예레미야의 믿음을 촉구하고 확신을 심어주기 위한 하나님의 강력한 도전입니다.

-관주: 이 질문은 창세기 18장 14절에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주셨던 말씀,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경수가 끊어진 사라가 아이를 낳는 생물학적 불가능 앞에서 하나님은 전능성을 선포하셨습니다. 또한 신약으로 넘어와 누가복음 1장 37절에서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선언합니다.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여 하나님은 인간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임을 보여주십니다.

-적용: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물으십니다. "네가 고민하는 그 문제가 나에게도 어렵겠느냐?" 우리가 보기에 태산 같은 문제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작은 티끌에 불과합니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사중복음 중 신유와 재림의 신앙은 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기초합니다. 내 이성으로 계산이 끝나지 않는 상황이라도, 하나님의 되게 하심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성도의 자세입니다.

3: 미래를 여시는 소망의 약속 (본문의 문맥적 의미)

27절의 말씀은 단순히 하나님의 힘자랑이 아닙니다. 이는 멸망해가는 예루살렘에서 '아나돗의 밭을 사라'는 명령의 정당성을 부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당장은 바벨론에 의해 나라가 망하겠지만, 장차 이 백성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는 '회복의 약속'을 보증하고 계십니다.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는 선포는 심판 중에도 구원을 계획하시고, 죽음 같은 상황에서도 부활의 소망을 심으시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관주: 욥기 42장 2절에서 욥은 모든 고난을 통과한 후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라고 고백합니다. 이는 고난의 한복판에서도 하나님의 섭리가 작동하고 있음을 깨달은 자의 고백입니다. 또한 로마서 4장 17절은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을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라고 묘사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파괴가 목적이 아니라, 궁극적인 회복과 생명을 향해 있습니다.

-적용: 지금 당장 눈앞의 현실이 멸망해가는 예루살렘 성벽처럼 암울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 폐허 속에 소망의 씨앗(밭)을 심으라고 하십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심어야 할 믿음의 씨앗, 기도의 씨앗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순종을 통해 먼 훗날 반드시 회복의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맺는말[Conclusio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예레미야 시대나 지금이나, 세상은 여전히 불안하고 우리의 육체는 연약합니다. 때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의 명령 앞에 서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상황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뛰어넘어 역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근거를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께는 막힌 길이 없고, 풀지 못할 문제가 없습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의 마음에 있는 불신과 두려움을 내려놓으십시오. 내 이성으로 판단했던 '불가능'의 잣대를 꺾어버리십시오. 하나님은 모든 육체를 다스리시는 분이며, 인간의 끝에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시는 분입니다. 멸망을 앞둔 시점에 미래의 회복을 위해 밭을 사게 하신 그 하나님을 신뢰합시다. 우리 삶의 가장 어두운 밤에, 가장 밝은 새벽을 준비하시는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며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설교에 대한 질문:

1.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인간의 어떤 속성을 강조하며,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2.  예레미야가 멸망 직전에 밭을 산 행위와 본문의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라는 말씀은 서로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가?

3.  당신의 삶에서 현재 "이것만은 하나님도 어쩔 수 없을 것 같다"라고 느끼며 제한하고 있는 문제는 무엇인가?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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