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역대하 7장 15절 강해 설교 - 이 곳에 머무는 하나님의 시선과 경청

제목 이 곳에 머무는 하나님의 시선과 경청
본문: 역대하 7장 15절 

"이제 이 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마치고 봉헌식을 올려드렸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 찼습니다. 본문은 그 감격적인 봉헌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밤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성전이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 백성이 만나는 거룩한 처소임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모여 예배하는 이 자리가 바로 하나님께서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시는 기적의 현장임을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1. 구별된 장소의 은혜: "이제 이 곳에서 하는 기도에" (15절 a)

하나님께서는 "이 곳"을 지목하셨습니다. 이는 솔로몬이 지은 성전을 가리키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구별하여 드린 모든 예배 처소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Omnipresent)하신 분이시기에 어디에나 계시지만, 당신의 백성이 언약을 붙들고 모여 기도하는 구별된 장소에 특별한 임재를 약속하셨습니다. '이제'라는 단어는 성전 봉헌을 기점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했음을 알립니다. 이 곳은 죄인이 하나님을 만나 용서받고, 거룩함을 회복하는 성결의 장소입니다.

-관주: 창세기에 등장하는 야곱은 벧엘에서 꿈을 꾼 후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라고 고백하며 그곳을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렀습니다(창 28:16-17). 이는 장소가 가지는 영적 의미를 보여줍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8장 20절을 통해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의 성전이 물리적 공간에 집중되었다면,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 자체가 성전이 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구별된 마음들이 모인 그 '장소'를 주목하십니다.

-적용: 여러분은 교회를 어떤 곳으로 여기고 계십니까? 단순히 종교 생활을 위한 건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구별하여 만나주시기로 약속한 언약의 장소입니다. 우리가 성전에 모여 합심하여 기도할 때, 개인의 골방에서 드리는 기도와는 또 다른 차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거룩한 성전을 사랑하고, 모이기에 힘쓰십시오. 이 곳에서 드려지는 여러분의 기도가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2. 감찰하시는 사랑의 눈길: "내가 눈을 들고" (15절 b)

하나님께서는 "눈을 든다"고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이 표현은 단순한 시각적 인지를 넘어선,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보살피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눈을 드신다는 것은 당신의 백성을 향한 집중(Concentration)입니다. 주님은 성전에서 기도하는 자들의 형편과 처지, 그 마음의 중심을 꿰뚫어 보십니다. 우리의 고통, 눈물, 그리고 간절한 소망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시겠다는 적극적인 보호의 약속입니다.

-관주: 시편 34편 15절은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시선이 의로운 삶을 살려고 몸부림치는 자들에게 고정되어 있음을 설명합니다. 또한 신명기 11장 12절에서는 약속의 땅을 설명하며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시선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시간의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되는 불변의 사랑임을 확증해 줍니다.

-적용: 때로는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것 같고, 나의 고난이 잊혀진 것 같아 외로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의 눈은 여러분을 향해 활짝 열려 있습니다. 그분의 시선은 감시자의 눈초리가 아니라, 사랑하는 자녀를 보호하려는 아버지의 눈길입니다. 하나님 앞(Coram Deo)에 서 있음을 기억하며, 정직하고 진실하게 기도하십시오. 주님의 눈이 여러분의 상한 심령을 어루만지실 것입니다.

3. 응답하시는 세밀한 경청: "귀를 기울이리니" (15절 c)

하나님은 눈으로 보실 뿐만 아니라, "귀를 기울이시는" 분입니다. 여기서 '귀를 기울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카샤브(qashab)'의 파생형으로, 단순히 소리를 듣는 것을 넘어 몸을 굽혀 작은 신음 소리까지 잡아내려는 경청의 태도를 뜻합니다. 이는 기도의 응답에 대한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왕이신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인간의 기도에 귀를 갖다 대시는 것은 놀라운 은혜이자 겸손입니다. 이 약속 때문에 성전에서의 기도는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습니다.

-관주: 이사야 59장 1절은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청력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기도가 막히는 것은 죄의 문제 때문일 뿐, 회개하고 나아가는 자에게는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또한 요한일서 5장 14절은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귀를 기울이신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기도할 수 있는 담대함과 확신을 부여합니다.

-적용: 우리는 종종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까 봐 불안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의 화려한 언변이 아니라, 중심의 간구를 들으십니다. 작은 신음, 말로 다 표현 못 해 흘리는 눈물 소리까지도 주님은 경청하십니다. 기성교단(성결교회)의 사중복음 중 신유의 은혜도 간절한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하나님을 믿을 때 일어납니다. 오늘 이 시간, 귀를 기울이고 계신 주님께 여러분의 가장 깊은 소원을 쏟아놓으십시오. 반드시 들으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맺는말[Conclusio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역대하 7장 15절은 성전을 봉헌한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축복이자, 오늘날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예배하는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거룩한 장소를 구별하셨고, 당신의 눈과 귀를 우리에게 고정시키겠다고 서약하셨습니다. 이것은 전능하신 창조주께서 연약한 피조물과 맺으신 놀라운 사랑의 계약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지금도 예배하는 여러분을 바라보고 계시며, 하나님의 귀는 여러분의 기도를 향해 열려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의 소리를 외면할지라도, 우리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성전을 중심으로 모이기에 힘써야 합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하신 말씀처럼, 기도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시는 이 복된 자리를 떠나지 마십시오. 우리의 기도가 하늘에 닿을 때, 치유와 회복, 그리고 부흥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 약속을 붙들고 이번 한 주간도 기도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에 대한 질문:

1.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이 곳"을 특정하여 말씀하신 영적인 이유는 무엇이며, 현대 신앙인에게 교회 공동체와 예배 처소는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2.  하나님께서 "눈을 든다"와 "귀를 기울인다"라는 신인동형론적(anthropomorphic) 표현을 사용하신 의도는 무엇이며, 이것이 기도하는 성도에게 주는 위로는 무엇입니까?

3.  솔로몬의 성전 봉헌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서 15절이 갖는 언약적 성격은 무엇이며,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확신과 어떻게 연결됩니까?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