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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2편 3절 강해 설교 - 찬송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

제목: 찬송 중에 거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
본문: 시편 22편 3절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주님의 거룩한 임재를 사모하는 예배자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시편 22편은 고통의 시인 동시에 영광의 시입니다. 다윗은 처절한 고통 속에서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절규합니다. 십자가 위 예수님의 고통을 예표하는 이 깊은 탄식 속에서, 다윗은 시선을 자신의 상처에서 하나님께로 돌립니다. 상황은 여전히 절망적이고, 원수들은 비웃으며, 뼈는 녹는 것 같지만, 그는 갑자기 놀라운 신앙의 고백을 터뜨립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3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거룩하십니다." 이것은 상황을 뛰어넘는 절대적인 신앙의 선포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찬송 중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거룩한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는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하나님의 절대적인 거룩하심 (3절 하반)

본문 하반절에 "주는 거룩하시니이다"라는 고백은 다윗의 신앙의 기초입니다. 여기서 '거룩'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도쉬(Qadosh)'는 '구별됨', '분리됨'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처한 비참한 현실, 죄악과 고통이 뒤섞인 카오스(혼돈) 속에서도 하나님만은 그 모든 무질서와 구별된 분이심을 인정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 변질되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도덕적으로 완전하시며, 속성에 있어서 피조물과 완전히 구별된 초월적인 분이십니다. 다윗은 자신의 느낌(버림받은 것 같은 감정)보다 하나님의 속성(변치 않는 거룩함)을 더 신뢰하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관주: 이 거룩함에 대한 인식은 이사야 선지자가 체험한 환상과 깊이 연결됩니다. 이사야 6장 3절에서 스랍들은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라고 창화합니다. 이사야가 본 환상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성전 문지방의 터를 요동치게 했습니다. 또한, 레위기 11장 45절에서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우리 기독교대한성결교회가 추구하는 핵심 가치인 '성결'의 기초가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단순히 그분의 상태를 묘사하는 것을 넘어, 언약 백성인 우리에게도 구별된 삶을 요구하시는 근거가 됩니다.

-적용: 성도 여러분, 인생의 밑바닥을 칠 때 우리의 감정은 "하나님은 안 계신다"라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감정이 아닌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나의 상황이 하나님의 성품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이 나의 상황을 재해석하게 해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이 아무리 진흙탕 같을지라도, 그곳과 구별되어 계시는, 아니 그곳을 거룩하게 변화시키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2: 찬송을 보좌 삼아 좌정하시는 왕 (3절 상반)

본문은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라고 묘사합니다. 여기서 '계시는'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야쉅(Yashab)'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앉다', '좌정하다', '거주하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이는 왕이 보좌에 앉아 통치하는 모습을 그려냅니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찬송할 때 그 찬송을 보좌(Throne) 삼아 그곳에 왕으로 임재하신다는 뜻입니다.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를 넘어, 하나님이 통치하실 자리를 마련해 드리는 영적인 행위입니다. 다윗은 고통 중에도 찬송함으로 하나님의 통치권을 자신의 삶으로 초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관주: 이 역동적인 임재의 역사는 구약 역사서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역대하 5장 13-14절을 보면, 솔로몬 성전 봉헌식 때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들이 일제히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할 때,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 찼다고 기록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쉐키나)이 찬송 중에 임한 것입니다. 또한 시편 80편 1절에서는 하나님을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이"라고 부릅니다. 언약궤 위의 그룹들 사이에 계시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성도들의 찬송을 그분의 보좌로 삼으시고 그 위에 앉으셔서 다스리시고 심판하시며 은혜를 베푸십니다.

-적용: 우리가 예배당에 모여 찬양할 때, 혹은 가정에서 홀로 찬송가를 부를 때,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 의자를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찬송이 없는 곳은 인간의 불평과 원망이 다스리지만, 찬송이 울려 퍼지는 곳에는 하나님이 왕으로 좌정하십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에 하나님의 다스림이 필요하십니까? 그렇다면 불평을 멈추고 찬송을 시작하십시오. 찬송은 하나님의 발등상이 내려오는 지점입니다.

3: 언약 백성과의 친밀한 관계 (3절 중반)

다윗은 하나님을 막연한 신으로 부르지 않고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단순한 민족의 이름이 아니라,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과 씨름하여 얻은 '승리자'라는 뜻의 언약적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사람의 노래 중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언약을 맺은 백성, 즉 구속받은 자들의 찬송 중에 특별히 거하십니다. 다윗은 자신이 비록 지금은 '벌레' 취급을 받고 있지만(6절), 여전히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이스라엘'의 일원임을 기억하며 기도의 줄을 놓지 않습니다.

-관주: 신약 시대로 넘어와서 이 '이스라엘'의 개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로 확장됩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은 우리를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고 선언합니다. 이는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특권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거듭난 성결한 성도들에게 계승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13장 15절은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라고 권면합니다. 구약의 제사가 동물의 피를 흘리는 것이었다면, 신약의 성도인 영적 이스라엘은 입술의 열매인 찬송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합니다.

-적용: 우리는 영적 이스라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구원받고 성령으로 거듭난 성결 교단 성도 여러분, 우리의 찬송에는 세상 노래가 흉내 낼 수 없는 권세가 있습니다. 그것은 언약의 관계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나의 백성'이라 부르시고, 여러분의 작은 신음 같은 찬송에도 귀를 기울이십니다. 나의 정체성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며 부르는 찬송이야말로 하늘 문을 여는 열쇠가 됩니다.

맺는말[Conclusio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다윗은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주는 거룩하시니이다"라고 선포했습니다. 이것은 상황에 함몰되지 않겠다는 믿음의 의지입니다. 우리 성결교회가 자랑하는 사중복음(중생, 성결, 신유, 재림)의 신앙도 결국 이 거룩하신 주님을 찬양하는 삶에서 시작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찬송할 때, 그 찬송을 보좌 삼아 우리 가운데 좌정하십니다. 우리의 찬송이 울려 퍼질 때 질병이 떠나가고(신유), 우리의 심령이 거룩해지며(성결), 잃어버린 영혼이 돌아오는(중생)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이제 우리 삶의 자리를 찬송의 제단으로 만듭시다. 불평이 나오려는 입술을 깨물고 찬송을 부르십시오. 절망의 그림자가 덮치려 할 때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십시오. 하나님은 그 찬송 소리를 듣고 여러분의 심령 중앙에 왕으로 찾아오실 것입니다. 고난의 밤에도 찬송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에게 주시는 승리가 여러분의 삶과 가정, 그리고 우리 교회 위에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설교에 대한 질문:

1.  시편 22편 3절에서 '계시는(히브리어: 야쉅)'의 의미는 무엇이며, 이것이 우리의 예배 태도에 어떤 변화를 주어야 합니까?

2.  다윗이 극한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고백한 이유는 무엇이며, 이것이 오늘날 성도들의 고난 대처에 어떤 교훈을 줍니까?

3.  '이스라엘의 찬송'과 일반적인 노래의 차이점은 무엇이며, 언약 백성으로서 우리가 드려야 할 찬송의 제사는 어떤 성격을 가져야 합니까?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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