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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7장 9절 강해 - 하늘 아버지의 사랑

제목: 하늘 아버지의 사랑
구절: 마태복음 7장 9절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마태복음 7장 9절 말씀을 통해 하늘 아버지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깊이 묵상하고자 합니다. 불완전한 육신의 아버지조차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려 하거든, 하물며 온전하신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얼마나 더 좋은 것을 주시겠습니까? 이 시간 성령의 조명하심 아래 참된 기도의 응답과 부성애를 온전히 살펴봅시다.

1: 아들의 간구 (9절 상반절)

강해: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가르치시며 가장 친밀한 가족 관계인 아버지와 아들의 비유를 들고 계십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라는 질문은 당시 청중들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을 상기시킵니다. 헬라어로 아들은 '휘오스'(υἱός), 떡은 '아르토스'(ἄρτος)입니다. 떡은 유대인들의 매일의 양식이자 생존의 필수품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생존에 필요한 떡을 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권리이자 간구입니다. 이는 성도 여러분이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일용할 양식과 영적인 은혜를 간구하는 기도의 본질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해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태복음 6:11)라는 주기도문의 내용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채우시는 분임을 늘 강조하셨습니다. 구약에서도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일 만나를 내려주심으로 그들의 육신적, 영적 굶주림을 채우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무언가를 구할 때, 그분은 멀리 계신 무관심한 신이 아니라 가장 가까이서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귀 기울이시는 자비로운 아버지이십니다.

적용: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때때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갈 때 하나님을 두렵고 엄격한 심판관으로만 생각하지 않습니까? 성령께서는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게 하십니다. 생존의 문제, 삶의 깊은 고민을 안고 주저하지 말고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자녀 된 특권을 온전히 누리며 기도의 능력을 경험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아버지의 본성 (9절 하반절)

강해: 이어서 주님은 "돌을 주며"라고 반문하십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둥글고 납작한 돌은 화덕에 구워낸 떡의 모양과 매우 흡사했습니다. 헬라어 '리토스'(λίθος)는 바로 이 돌을 의미합니다. 겉모양은 떡처럼 보일지 몰라도, 아들의 이빨을 상하게 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돌을 줄 아버지는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강한 부정의 수사적 질문입니다. 타락하고 악한 인간조차 자기 자식에게만큼은 유익하고 진짜인 것을 주려는 부성애의 본성을 가지고 있음을 주님은 깊이 통찰하셨습니다.

해설: 야고보서 1장 17절은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라고 증언합니다. 아버지는 자녀를 속이거나 해로운 것을 번지르르하게 포장하여 주지 않으십니다. 이사야 49장 15절에서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은 인간의 부성애와 모성애를 아득히 뛰어넘는 완전하고 거룩한 본성입니다.

예화: 1988년 아르메니아 대지진 당시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 어머니 스잔나와 4살 난 딸 가야네가 갇혔습니다. 물도 식량도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딸이 목마르다며 울부짖자, 어머니는 유리 조각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빨게 하여 딸의 목숨을 이었습니다. 14일 만에 구조되었을 때 인간 한계를 넘은 이 사랑은 세상을 울렸습니다. 인간조차 자식을 위해 생명을 내어주거늘, 십자가에서 독생자를 내어주신 하늘 아버지의 사랑은 얼마나 위대하겠습니까?

적용: 성도 여러분, 간절히 구했던 기도가 당장 응답되지 않거나 예상치 못한 고난이 찾아올 때, 하나님이 내게 '돌'을 주셨다고 원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연약한 눈에는 지금의 시련이 거친 돌처럼 보일지라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가장 완전한 영적 양식인 '떡'을 빚어가고 계심을 굳게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3: 응답의 절대적 확신 (9절 전체)

강해: 9절 전체에 흐르는 예수님의 수사학적 논법은 히브리어 관용적 표현인 '칼 바호메르'(קַל וָחֹמֶר), 즉 '가벼운 것에서 무거운 것으로' 나아가는 논리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악한 자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아는 것이 가벼운 전제라면, 선하신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응답하시는 것은 더더욱 확실하고 무거운 결론입니다. 성령의 관점에서 볼 때, 성도의 기도는 맹목적인 불확실성을 향한 외침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인 선하심에 대한 확신 그 자체입니다.

해설: 요한복음 6장 35절에서 예수님은 친히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일시적인 만족을 위한 돌을 주시지 않고, 영원토록 목마르지 아니할 참된 양식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8장 32절에서 고백했듯,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주신 십자가 사건이야말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떡을 주셨음을 입증하는 가장 위대한 표적입니다.

적용: 성도 여러분, 우리의 기도가 점차 식어가는 이유는 응답에 대한 확신, 즉 아버지의 선하심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응답의 형태나 시기가 우리의 뜻과 다를 수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침묵과 거절도 그분의 선하신 응답입니다. 가장 선하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장 영광스러운 것을 주신다는 십자가의 사랑을 단단히 붙잡고, 매일 기도의 무릎을 굳게 세우시기를 권면합니다.

맺는말[Conclusio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마태복음 7장 9절 말씀을 통하여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깊이 헤아려 보았습니다. 아들이 떡을 구할 때 결코 겉모양만 비슷한 돌을 주지 않는 육신의 아버지를 넘어, 우리 영혼의 참된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변함없는 사랑과 긍휼로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을 세밀하게 돌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작은 신음조차 흘려듣지 않으시며 가장 선하고 안전한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며,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척박하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의심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은혜의 보좌,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늘 아버지의 성품을 온전히 신뢰할 때, 우리의 기도는 단순한 간구를 넘어 평안과 기쁨이 넘치는 거룩한 교제로 승화될 것입니다.

이제 세상으로 나아가는 성도 여러분의 발걸음마다 응답의 확신이 차고 넘쳐나기를 소망합니다. 썩어질 육신의 필요를 좇는 것을 넘어 영혼의 참된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해져서, 가정과 직장과 이웃에게 그 생명의 양식을 나누어주는 축복의 통로가 되십시오. 하늘 아버지의 풍성하고 한없는 은혜가 여러분의 삶 가운데 온전히 함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설교에 대한 질문:

1. 내가 하나님께 '떡'을 구했을 때, 하나님께서 내 생각과 다르지만 가장 선한 방식으로 응답하셨던 경험은 무엇입니까?

2. 내 삶 속에서 원망스러운 '돌'처럼 여겨졌던 고난이, 지나고 보니 결국 하나님의 선하신 응답이자 축복이었음을 깨달은 적이 있습니까?

3. 하나님을 나의 참된 '아바 아버지'로 신뢰하며 오늘부터 다시 기도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내가 결단해야 할 구체적인 부분은 무엇입니까?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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