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로새서 3장 13-14절 칼럼 - 사랑은 온전한 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성결의 은혜를 사모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권면한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핵심 윤리를 마주합니다. 우리가 부름받은 성결한 삶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구체적으로 증명됩니다. 바울은 먼저 '서로 용납함'과 '용서'를 명령합니다. 여기서 용납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연약함과 허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내는 영적 인내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타인을 용서해야 하는 절대적인 근거는 바로 '주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에 있습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였던 우리가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죄의 빚을 십자가 보혈로 탕감받았기에, 우리 역시 형제의 작은 허물을 용납할 자격을 얻은 것입니다.
용서가 갈등을 해결하는 소극적인 단계라면, 그 모든 관계를 완성하는 최종적인 결론은 바로 '사랑'입니다. 본문은 이 모든 미덕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말씀합니다. 사랑은 '온전하게 매는 띠'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신앙의 덕목과 은사가 있더라도, 사랑이라는 띠로 묶이지 않으면 공동체는 금세 흩어지고 맙니다. 마치 예복을 다 갖추어 입고 마지막에 허리띠를 매어 옷차림을 완성하듯, 사랑은 성도 개개인을 하나로 묶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인 온전함(Perfection)에 이르게 하는 성령의 도구입니다.
웨슬리안 성결 전통에서 강조하는 온전함은 법적인 무결함이 아니라 '사랑의 충만함'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확신 속에서 그분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될 때, 우리는 비로소 미움과 시기를 이기고 형제를 진심으로 품을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누군가를 향한 섭섭함이나 원망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를 먼저 용납하신 주님의 그 크신 사랑을 기억하며, 그 위에 사랑의 띠를 두르십시오. 그때 비로소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임하며, 세상을 이길 성결한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말씀 묵상에 관한 질문:
1. 내가 오늘 주님의 용서를 기억하며 기꺼이 용납하고 용서해야 할 대상은 누구입니까?
2. 내 신앙의 모습 중에 '사랑의 띠'가 빠져 있어 공동체와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3. '사랑의 온전함'을 이루기 위해 오늘 내가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할 말과 행동은 무엇입니까?
기도합시다:
사랑의 하나님, 저희를 먼저 용서해 주신 그 크신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형제의 허물을 용납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주시고, 무엇보다 그 위에 사랑을 더하여 온전한 연합을 이루게 하옵소서.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띠가 되어 매일의 삶이 성결한 제사가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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