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나 4장 11절 칼럼 - 생명을 아끼는 마음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요나의 분노는 인간의 좁은 시야를 여실히 보여준다. 자신에게 그늘을 제공하던 박넝쿨이 시들자 요나는 죽기를 구하며 하나님께 항거한다. 자신의 안위와 편익이 사라진 것에는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정작 멸망의 위기에 처한 거대한 성읍의 영혼들에 대해서는 철저히 냉담했다. 이러한 요나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가진 이기적인 단면과 무척이나 닮아 있다.
하나님은 요나의 편협한 민족주의와 선민의식을 꾸짖으신다. 당시 니느웨는 이스라엘을 압제하던 아시리아의 수도였다. 요나의 눈에 그들은 심판받아 마땅한 원수였으나, 하나님의 눈에는 그들 역시 돌보아야 할 피조물이었다. 하나님은 인간이 그어 놓은 경계선과 적대감을 넘어, 고통받는 모든 생명을 향해 긍휼의 시선을 거두지 않으시는 분이다.
본문에 언급된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 십이만 명'은 영적 무지 속에 살아가는 수많은 군중을 상징한다. 그들은 죄의 길을 가면서도 그것이 죽음인 줄 모르는 가련한 인생들이다. 하나님은 인간뿐만 아니라 미물인 가축들까지도 소중히 여기신다고 말씀하신다. 이는 창조주께서 당신의 손으로 지으신 모든 만물을 얼마나 지극히 사랑하시는지를 확증하는 대목이다.
성결교회의 신앙은 성결과 전도를 핵심 가치로 삼는다. 성결은 단순히 개인의 도덕적 깨끗함을 넘어,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이 합해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하나님이 아끼시는 영혼을 우리도 아끼고, 하나님이 눈물 흘리시는 곳에서 우리도 함께 우는 것이 참된 성결이다.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눈물은 오늘날 우리가 회복해야 할 전도자의 심장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제 박넝쿨처럼 사소한 개인의 이익과 감정에 매몰된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 곁에 있는 이웃, 심지어 내가 용납하기 어려운 이들조차 하나님의 아끼심 속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원수까지 품으시는 창조주의 넓은 품을 닮아, 세상의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복음의 사랑을 나누는 넉넉한 믿음의 길로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칼럼에 관한 질문:
1. 요나가 박넝쿨에 대해 가졌던 애착과 니느웨 성읍을 대하는 태도의 온도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2.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들에게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
3. 우리가 하나님의 '아끼는 마음'을 품기 위해 내려놓아야 할 개인적인 '박넝쿨'은 무엇인가?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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