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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0장 24절 강해 - 걸음의 주인

제목: 걸음의 주인
구절: 잠언 20장 24절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서론: 우리는 매일 수많은 계획을 세우며 살아갑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의 일정을 그리고, 한 해가 시작되면 일 년의 목표를 세웁니다. 때로는 그 계획이 뜻대로 이루어지고, 때로는 전혀 다른 길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잠언 기자는 우리의 걸음이 실상 여호와로 말미암는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이 짧은 한 구절 속에서, 우리 삶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과 우리 이해의 한계를 함께 발견하며, 참된 신뢰의 걸음이 무엇인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걸음을 정하시는 하나님 (20:24상)

강해: 히브리어 원문은 "מֵיְהוָה מִצְעֲדֵי־גֶבֶר"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מִצְעָד"(미츠아드)는 단순한 걸음이 아니라 군대의 행진, 곧 방향과 목적을 가진 발걸음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גֶבֶר"(게베르)는 일반적인 사람을 뜻하는 "아담"보다 강하고 능력 있는 장정, 힘 있는 남자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히브리어 문장 순서상 "여호와로 말미암아"라는 말이 문장 맨 앞에 놓여 있는데, 이는 히브리어의 강조 어순으로서 그만큼 하나님이 걸음의 근원이심을 힘 있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강하고 유능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의 발걸음의 방향과 속도, 그리고 그 걸음이 향하는 목적지까지도 여호와께서 정하신다는 뜻입니다.

해설: 이 말씀은 성경 전체에서 반복되는 하나님의 주권적 인도하심의 진리와 맞닿아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라고 노래하며, 의인의 걸음마다 하나님의 세심한 관심이 있음을 증언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 역시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어가는 사람에게 자기 걸음을 지도함이 없나이다"라고 고백하며, 인간이 스스로 자기 인생의 방향을 결정할 능력이 없음을 겸손히 인정합니다. 또한 같은 잠언서 안에서도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는 이는 여호와시니라"고 말씀하여, 계획은 사람의 몫이지만 그 계획을 실제로 이루어 가시는 분은 언제나 하나님이심을 거듭 확인시켜 줍니다.

적용: 성도 여러분, 우리는 종종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전적으로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계획하고 최선을 다해 실행하면 반드시 원하는 결과를 얻을 것이라 믿으며 살아갑니다. 물론 성실한 준비와 노력은 성도에게 마땅히 요구되는 덕목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그 모든 노력의 최종 결과가 우리 손이 아니라 여호와의 손안에 있음을 분명히 알려 줍니다. 여기 "게베르"라는 단어가 쓰인 것을 다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가장 힘 있고 유능한 사람조차도 자기 걸음의 방향을 스스로 정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계획을 세우든 그 시작과 끝에 반드시 하나님을 모셔야 합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 자녀의 진로를 결정하기 전, 중요한 선택 앞에서 먼저 무릎 꿇어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계획이 하나님의 손안에서 다듬어질 때, 비로소 그 걸음은 흔들리지 않는 걸음이 됩니다. 때로는 우리가 원하던 길이 막히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길이 열리기도 합니다. 그럴 때 낙심하기보다, 그 길 또한 여호와께서 정하신 걸음일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부터 매일의 일정을 정할 때마다 "이 걸음의 주인은 여호와이십니다"라고 고백하며 하루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그 고백이 습관이 될 때, 우리의 계획은 조급함을 벗고 평안 가운데 이루어져 갈 것입니다.

2. 알 수 없는 인생의 길 (20:24하)

강해: 본문 후반부의 히브리어는 "וְאָדָם מַה־יָּבִין דַּרְכּוֹ"입니다. "יָּבִין"(야빈)은 "בִּין"(빈)이라는 동사에서 나온 말로, 단순히 아는 것을 넘어 사물의 이치를 꿰뚫어 분별하는 통찰력을 의미합니다. "마 야빈"이라는 의문형은 히브리어에서 대답이 이미 정해진 수사의문문으로, "결코 알 수 없다"는 강한 부정을 뜻합니다. 신약에서도 바울은 하나님의 판단과 길에 대해 "아넥세류네타"(ἀνεξερεύνητα), 곧 "헤아릴 수도 찾아낼 수도 없는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는 잠언 기자의 고백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걷고 있는 그 길의 전체 그림을 결코 다 파악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해설: 이사야 선지자는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인간의 사고와 하나님의 경륜 사이에는 하늘과 땅 사이만큼의 간격이 있음을 알려 줍니다. 전도자 역시 "사람이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일을 궁구하여도 능히 깨닫지 못하나니"라고 고백하며, 아무리 지혜로운 자라도 인생 전체의 이치를 다 헤아릴 수 없다고 탄식합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라고 찬양하는데, 이 모든 말씀은 결국 우리의 제한된 시야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 사이의 간격을 인정하고, 오직 그분을 신뢰함으로만 참된 평안에 이를 수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예화: 6·25전쟁 당시, 짙은 안개가 낀 산길을 행군하던 한 국군 병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지금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그저 앞서가는 향도병의 발걸음 소리만 의지하여 한 걸음씩 어둠 속을 내디뎠습니다. 몇 번이고 걸음을 멈추고 싶었지만, 총소리와 포성이 울리는 그 밤, 그는 오직 앞선 이의 확신에 찬 발걸음을 믿고 계속 따라갔습니다. 날이 밝은 뒤, 그는 자신이 밤새 지나온 길이 실은 지뢰밭 사이로 정확히 이어진 좁은 안전 통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함께 출발했던 다른 병사들 중에는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지름길을 찾겠다며 몰래 대열을 벗어났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자신은 그 길의 위험을 전혀 몰랐지만, 그 길을 미리 아는 이가 앞서 인도했기에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적용: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에도 안개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진로를 결정해야 할 때, 질병 앞에서, 사업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종종 다음 발걸음이 옳은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그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오히려 그 무지를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자신의 지혜와 판단만을 붙들고 홀로 걸어가려는 사람은 반드시 지치고 넘어지지만, 앞을 다 볼 수 없어도 인도자의 손을 붙잡고 걷는 사람은 결국 안전한 길에 이르게 됩니다. 그 국군 병사가 안개 속에서 앞을 보지 못했음에도 향도병의 발걸음 소리를 신뢰함으로 살아남았듯이, 우리도 지금 당장 모든 답을 알지 못해도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면 충분합니다. 이번 한 주간, 스스로 답을 다 찾으려 애쓰기보다 먼저 무릎 꿇어 주님께 여쭙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조급하게 대열을 벗어나 지름길을 찾다가 위험에 빠졌던 이들처럼, 우리도 앞이 답답하다는 이유로 스스로 판단하여 성급히 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내가 다 알지 못해도 나를 인도하시는 분이 온전히 아신다는 사실이 오늘 우리의 참된 위로와 힘이 됩니다. 그 믿음으로 오늘 주어진 한 걸음, 오직 그 한 걸음만을 신실하게 내디디시기 바랍니다.

3. 맡기며 걷는 믿음 (20:24)

강해: 이 한 구절은 결국 우리를 하나의 신앙적 결단으로 초대합니다. 시편 37편에서 다윗은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고 권면하는데, 여기 사용된 히브리어 동사는 "גָּלַל"(갈랄)에서 온 "גֹּל"(골)로, 문자적으로는 "굴리라"는 뜻입니다.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낑낑대는 것이 아니라, 마치 큰 돌을 굴려 넘기듯 자신의 인생 전체를 통째로 하나님께 넘겨 드리라는 매우 생생하고 적극적인 표현입니다. 잠언 20장 24절이 우리 이해의 한계를 지적하는 이유는 절망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바로 이 굴려 넘기는 신뢰의 삶으로 우리를 초청하기 위함입니다.

해설: 같은 잠언서에서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말씀하는데, 이는 오늘 본문과 정확히 동일한 흐름 속에 있는 권면입니다. 신약의 베드로 역시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고 가르치는데, 여기 사용된 헬라어 "에피립산테스"(ἐπιρίψαντες)는 짐을 통째로 던져 버리는 강렬한 동작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결국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진리를 증언합니다. 인간의 이해력이 부족함을 인정하는 겸손과, 그 부족함을 채우시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는 신뢰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신앙적 자세라는 것입니다.

적용: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우리 각자의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놓지 못하고 붙들고 있는 계획, 스스로 해결하려 애쓰며 밤잠을 설치게 하는 문제들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무 생각 없이 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우리의 계획과 지혜를 넘어서는 자리에서, 마지막 결정권을 주님께 굴려 넘기라고 말씀하십니다. "골"이라는 히브리어 동사가 보여 주듯, 이는 억지로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무거운 짐을 통째로 굴려 넘기는 적극적인 신뢰의 행위입니다. 오늘부터 하루를 시작하기 전, 짧게라도 "주님, 오늘 제 걸음을 정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습관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그날 풀리지 않은 문제들을 하나씩 주님 앞에 내려놓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가정의 문제, 자녀의 미래, 건강의 염려, 재정의 어려움까지, 크고 작은 모든 짐을 목록으로 적어 놓고 하나씩 기도로 굴려 넘겨 보시기 바랍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불안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렇게 맡기는 훈련이 반복될수록 우리 마음에는 이전에 알지 못했던 참된 평안이 자리 잡게 됩니다. 그 작은 기도가 쌓여 우리의 인생 전체를 하나님의 인도하심 안에 온전히 맡기는 믿음의 걸음이 될 것입니다.

맺는말:

잠언 20장 24절은 짧은 한 구절이지만, 우리 신앙의 가장 근본적인 자세를 되짚어 줍니다. 우리의 걸음은 우리 것이 아니라 여호와로 말미암습니다. 아무리 유능하고 강한 사람이라도 자기 발걸음의 방향을 스스로 정할 수 없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겸손히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붙들고 있던 자기 확신을 내려놓고, 다시 한 번 여호와 앞에 겸손히 서기를 원합니다.

동시에 이 말씀은 우리에게 절망이 아니라 위로를 줍니다. 내가 내 길을 다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두려움의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나를 다 아시는 분께 나아갈 이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안개 속에서도 앞서가신 인도자의 발걸음 소리를 의지했던 그 병사처럼, 우리도 보이지 않는 길 앞에서 주님의 손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무지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온전히 아시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만드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이 진리를 깨달을 때, 우리 마음속 두려움은 조금씩 신뢰로 바뀌어 갑니다.

이번 한 주간, 스스로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대신 아침마다 주님께 오늘의 걸음을 맡기는 기도로 하루를 여시기 바랍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낙심하지 마시고, 나를 인도하시는 분의 발걸음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걸음을 정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예배당을 나서는 모든 성도의 발걸음 위에 동일하게 함께하시고, 가정과 일터와 삶의 모든 자리에서도 흔들림 없이 그 길을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설교 관련 질문:

1. 최근 나의 계획이 뜻대로 되지 않았던 경험이 있다면, 그 순간 여호와께서 나의 걸음을 정하고 계셨을 가능성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2.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라는 고백이 나에게 절망이 아니라 위로가 되려면, 오늘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까요?

3. 다윗이 고백한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는 말씀처럼, 지금 내가 통째로 굴려 넘겨야 할 짐은 무엇입니까?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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