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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36장 23절 강해 -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

제목: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
구절: 에스겔 36장 23절

"내가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내 거룩함을 나타낼 때에 여러 나라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서론: 우리는 오늘 에스겔 36장 23절 말씀 앞에 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 수치의 현장에서 이방 민족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무능하다"며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더럽혀진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거룩하게 회복하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임하고 있습니다.

1. 더럽혀진 이름의 비극 (23a절)

강해: "내가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거룩하게 할지라"

히브리어 원문에서 '거룩하게 하다'는 동사는 וְנִקְדַּשְׁתִּי (웨니크다쉬티, 피엘 완료 수동형)입니다. 이 형태는 단순한 미래의 약속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실 확정된 행위를 나타냅니다. '더럽혀진'은 חָלַל (할랄)로, 원래 '상처를 내다', '찌르다'는 뜻에서 파생되어 거룩한 것을 세속적으로 만드는 행위를 가리킵니다(HALOT).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 땅으로 끌려감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이 열방에서 상처 입고 조롱받게 된 것입니다. '큰 이름'(שְׁמִי הַגָּדוֹל, 쉐미 핫가돌)은 하나님의 본질과 성품 자체를 가리킵니다. 이름이 더럽혀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신실하심이 의심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해설: 백성의 죄로 인한 포로 생활은 이방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비웃게 만들었습니다(시 79:10, "이방인들이 어찌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말하게 하시나이까"). 마찬가지로 느헤미야도 예루살렘의 파괴된 성벽 앞에서 "우리가 주 앞에서 범죄하였나이다"(느 1:6)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이름이 훼손된 책임이 백성의 불순종에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은 단순히 종교적 문제가 아니라 열방 앞에서 하나님의 통치권이 가려지는 비극입니다. 히브리어 שֵׁם (쉠, '이름')은 고대 근동 문화에서 인격과 본질과 명예 전체를 포함하는 개념이었기에, 하나님의 이름이 훼손됨은 그분의 존재 자체가 모욕받는 것과 같았습니다.

적용: 오늘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이웃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말과 행동이 "저 사람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를 보여줍니다. 성도의 불성실한 삶, 다툼, 거짓말은 곧 하나님의 이름을 할랄, 곧 상처 내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우리는 매일 "내 삶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 서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 친히 회복하신다 (23b절)

강해: "내가 그들의 눈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내 거룩함을 나타낼 때에"

여기서 핵심 동사 וְנִקְדַּשְׁתִּי (웨니크다쉬티)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통하여 스스로를 거룩하게 드러내신다는 뜻입니다. 헬라어 번역에서는 이 표현이 ἁγιασθήσομαι (하기아스데소마이)로 옮겨지는데, '거룩하다'를 뜻하는 ἅγιος (하기오스)에서 온 말로, 구별되고 완전하며 순수한 존재임을 선포하는 단어입니다(BDAG). 회복의 주체는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입니다. "너희로 말미암아"(בָּכֶם, 바켐)는 이스라엘이 도구가 됨을 뜻하지만, 행위자는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더럽혀진 이름을 회복할 능력은 인간에게 없고,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해설: 이사야 43장 25절은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라고 선언합니다. 용서와 회복은 인간의 공로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결정으로부터 나옵니다. 또한 요한복음 17장 1절에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아버지여,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은 에스겔 36장의 성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더럽혀진 하나님의 이름이 온 세상 앞에서 가장 완전하게 거룩하게 드러났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사역은 결국 십자가에서 절정에 이른 것입니다.

예화: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겨울, 한 노병이 들려준 이야기가 있습니다. 낙동강 전선이 무너지기 직전, 전세가 극도로 불리해진 상황에서 한 군인은 신앙을 버리고 싶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이 참상이 왜 일어납니까?" 그러나 9월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고 전세가 역전되던 날, 그는 무릎을 꿇고 이렇게 고백했다 합니다. "하나님, 당신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이 모든 것을 잃었다고 느끼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친히 일어나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십니다. 에스겔 36장의 약속처럼, 회복은 언제나 하나님의 손에서 시작됩니다.

적용: 우리가 실패하고 쓰러졌을 때,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이미 너무 많이 더럽혔다"는 절망에 빠지지 마십시오. 회복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통하여 자신의 거룩하심을 나타내기 원하십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 자신을 그 도구로 그분께 내어드리는 것이 바로 믿음의 응답입니다.

3. 열방이 알게 될 그 이름 (23c절)

강해: "여러 나라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구절의 클라이맥스는 '알리라'는 동사 וְיָדְעוּ (웨야드우)에 있습니다. 히브리어 יָדַע (야다)는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경험을 통한 깊은 인격적 인식을 가리킵니다(HALOT). 에스겔서 전체에서 이 표현은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는 형태로 수십 번 반복되는 '인식 공식(recognition formula)'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은 열방으로 하여금 יְהוָה (여호와), 곧 스스로 있는 자, 언약에 신실하신 분이 참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נְאֻם אֲדֹנָי יְהוִה, 네움 아도나이 여호와)는 이 약속의 절대적 신뢰성을 보증하는 서명입니다.

해설: 출애굽기 9장 16절에서 하나님은 바로에게 "내가 너를 세운 것은 내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언제나 열방을 향한 선교적 목적을 품고 있습니다. 시편 46편 10절의 "내가 하나님인 줄 알아라"는 선언도 같은 맥락입니다. 신약에서는 빌립보서 2장 10절-11절이 이 성취를 증언합니다.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에스겔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완전히 실현되고 있습니다.

적용: 우리 교회 공동체의 존재 이유는 단순히 우리끼리 위로받고 복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살아갈 때, 우리 주변의 이웃들이 "그들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시다"를 경험하게 됩니다. 진주 지역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우리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을 열방에 드러내는 증인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가장 거룩하고 고귀한 사명입니다.

맺는말[Conclusion]:

에스겔 36장 23절은 단순한 이스라엘 회복의 예언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 자신의 영광, 자신의 거룩하심을 반드시 온 세상 앞에 드러내시겠다는 주권적 선언입니다. 우리의 불순종과 연약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가려지는 일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웨니크다쉬티", 곧 반드시 자신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실 것을 확정하셨습니다.

그 회복의 도구로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바울이 고린도후서 4장 7절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 그대로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자를 쓰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그분께 맡기는 자를 통해 일하십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두려움이 아니라 깊은 감사와 경외의 이유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이 말씀은 우리에게 방향을 줍니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우리의 삶, 우리의 교회, 우리의 공동체는 이 목적을 위해 존재합니다. 오늘 이 자리를 떠나 일상으로 돌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증언하는 자로 파송받는 것입니다. 그 이름이 우리를 통해 거룩하게 빛나기를, 그리하여 진주와 온 땅이 여호와를 알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설교 관련 질문:

1. 내 삶의 어느 부분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으며,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내가 지금 해야 할 구체적인 결단은 무엇입니까?

2. 하나님께서 회복의 주체가 되신다는 사실이 나에게 어떤 위로와 도전을 동시에 줍니까?

3. "열방이 여호와를 알게 된다"는 말씀 앞에서, 나는 지금 어떤 방식으로 내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증언하고 있습니까?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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