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복음 3장 12절 칼럼 - 보이지 않는 신비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우리는 흔히 '눈에 보이는 것'만을 진실이라 믿으며 살아간다. 손에 잡히는 물질, 숫자로 증명되는 성과,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만이 안전한 발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세상을 바꾼 위대한 발견이나 예술적 영감은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시작되었다. 보이는 현상 너머에 존재하는 근원적인 질서를 외면한 채, 우리는 과연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천 년 전, 지성인이었던 니고데모는 밤중에 한 스승을 찾아와 삶의 근본적인 갈증을 토로했다. 그때 예수는 그에게 아주 낯선 개념을 제시한다. 그것은 '땅의 일(τὰ ἐπίγεια, 타 에피게이아)'과 '하늘의 일(τὰ ἐπουρά니아, 타 에푸라니아)'에 관한 구분이었다. 예수는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바람의 움직임이나 생명의 탄생 같은 자연적인 이치조차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그 너머의 영원한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이 질문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성도는 이 세상이라는 거대한 기계 장치의 부속품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땅의 일'은 사실 보이지 않는 '하늘의 일'의 그림자일 뿐이다. 사랑, 희망, 희생과 같은 가치들은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 삶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실체다. 땅의 원리를 넘어서는 더 높은 차원의 섭리가 있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인간은 존재의 한계를 돌파할 용기를 얻게 된다.
물론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현대인에게 모험과도 같다. 모든 것을 데이터화하고 분석하려는 습성은 우리로 하여금 신비(Mystery)를 거부하게 만든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없듯이, 생명의 근원인 창조주의 섭리 또한 물리적인 증거로만 설명될 수 없다. 신뢰는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진리 앞에 마음의 문을 여는 행위에서 시작된다.
하늘의 일을 믿는다는 것은 현실 도피가 아니다. 오히려 땅의 일을 가장 가치 있게 살아내는 힘이다.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오늘을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일상의 사소한 고난에 함몰되지 않고 의연하게 걸어갈 수 있다. 땅의 중력에 묶여 고개 숙인 인생이 아니라, 하늘의 소망을 품고 대지를 딛는 당당한 존재로 거듭나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가 니고데모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건네는 초대장이다.
이제 시선을 조금만 높여보자. 발밑의 흙만 바라보던 습관을 잠시 멈추고, 우리 영혼이 갈망하는 높은 곳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땅의 일에서 신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느덧 하늘의 신비 속에 발을 들여놓게 될 것이다. 보이는 세계는 유한하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는 영원하다. 그 영원한 진리가 당신의 삶을 새롭게 정의하기를 기대한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일상에서 경험하는 '땅의 일' 중 우리가 미처 다 이해하지 못하는 신비로운 현상은 무엇이 있습니까?
2. '보이지 않는 가치'(사랑, 믿음 등)가 실제 삶의 선택에 어떤 구체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십니까?
3. 눈에 보이는 성과와 지표가 전부인 세상에서 '하늘의 일'을 의식하며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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