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복음 12장 8절 칼럼 - 안식의 주인을 아는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바리새인들이 분노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 먹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에 이것은 명백한 율법 위반이었다. 수백 년간 쌓아 올린 규정들, 안식일에 걸어도 되는 걸음 수, 들어도 되는 무게-그 촘촘한 울타리 안에서 그들은 안식일을 지켜 왔다고 믿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선언하신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이 한 문장은 단순한 논쟁의 승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안식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를 가리키는 근원적인 선언이다.
'안식일'은 히브리어로 שַׁבָּת(샤밧)이다. '멈추다, 쉬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후 일곱째 날 쉬셨고, 그 쉼을 인간에게 선물로 주셨다. 안식일은 처음부터 규정이 아니라 선물이었다. 헬라어로는 κύριος(퀴리오스)-'주인, 주님'-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예수님은 자신이 안식일을 만드신 창조주와 동일한 분임을 선언하신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이라는 선물의 포장지를 숭배하느라 선물 자체를 놓쳤다.
우리 시대의 안식은 어디에 있는가. 현대인들은 역설적으로 더 많이 쉬면서 더 지쳐 간다. 주말이 있고 휴가가 있지만 영혼은 쉬지 못한다. 끊임없이 울리는 알림음, 성과를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 비교와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진짜 쉼은 사라졌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안식은 단순히 활동을 멈추는 것이 아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그분 앞에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안식의 출발점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이미 초청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안식의 주인은 규정 속에 계시지 않는다. 그분은 우리 곁에 계신다. 안식일 논쟁의 핵심은 결국 이것이다-당신은 규정을 붙잡고 있는가, 아니면 그 규정을 뛰어넘는 인격적인 주님을 붙잡고 있는가.
성도라면 이 질문 앞에 정직해야 한다. 예배당에 오는 것, 헌금하는 것, 봉사하는 것-이 모든 것이 혹시 나의 '안식일 규정'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주님과의 살아 있는 관계 없이 형식만 남은 종교는 바리새인들의 안식일과 다를 것이 없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종교적 수고를 원하시지 않는다. 그분은 우리의 삶 전체가 그분 안에서 안식하기를 원하신다.
안식일의 주인을 안다는 것은, 그분의 품 안에서 쉬는 법을 배웠다는 뜻이다. 오늘, 분주한 일상 한가운데서 잠시 멈추라. 규정이 아닌 인격으로, 의무가 아닌 사랑으로 주님께 나아가라. 안식일의 주인이신 그분이 오늘도 우리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계신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나는 지금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진정한 안식을 누리고 있는가, 아니면 종교적 규정의 무게에 눌려 지쳐 있는가?
2. 내 삶에서 "안식일의 포장지"-형식과 습관-가 오히려 주님을 가로막고 있는 부분은 없는가?
3.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시라는 선언이 오늘 나의 하루와 한 주를 어떻게 다르게 살도록 이끄는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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