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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3장 8절 칼럼 -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

"뛰어 일어나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나면서부터 걷지 못했던 사람이 있었다. 태어난 날부터 그날까지, 단 한 번도 자기 발로 서 본 적 없는 사람. 매일 성전 미문 앞에 앉아 지나는 이들의 동정심에 기대어 살아야 했던 사람. 그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돈을 구했지만, 그들이 건넨 것은 돈이 아니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사도행전 3:6). 그 순간, 수십 년간 굳어 있던 발목과 발이 힘을 얻었다.

그런데 본문이 주목하는 것은 '걷게 되었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그는 단지 걷지 않았다. 그는 뛰었다. 뛰어오르고, 걷고, 또 뛰었다. 오십여 년을 땅에만 붙어 있던 사람이 처음으로 땅을 박차고 위로 솟구쳤다. 그 움직임은 단순한 신체 회복이 아니라, 억눌렸던 모든 생애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폭발이었다. 회복은 조심스럽고 느린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회복은 때로 이토록 역동적이고 뜨겁다.

그리고 그는 성전으로 들어갔다. 평생 성전 '앞'에만 있던 사람이 처음으로 성전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미문(美門, the Beautiful Gate)은 아름다운 문이었지만, 그에게는 매일 앉아 구걸하던 수치의 자리였다. 그 문이 이제는 은혜의 통로가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장 오래된 아픔의 자리를 가장 아름다운 간증의 자리로 바꾸신다.

우리 삶에도 '미문 앞'이 있다. 오래도록 일어서지 못한 채 머물러 있는 자리, 반복되는 실패와 낙담 속에 주저앉은 자리. 그 자리가 때로는 너무 익숙해져서, 거기 앉아 있는 것이 자신의 운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오늘도 그 자리를 향해 말씀하신다. "일어나 걸으라."

회복된 자의 마지막 행동은 찬송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찬송하며 들어갔다. 고침을 받은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은혜를 하나님께 돌려드렸다. 찬송은 회복의 증거이며,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가장 순수한 감사의 언어다. 오늘 우리가 걷고 있다면, 그리고 그 걸음이 누군가의 기도와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해진 것이라면, 우리 역시 뛰며 찬송할 이유가 있다.

다시 일어서는 사람은 조용하지 않다. 그는 뛰고, 들어가고, 찬송한다. 오늘, 당신의 미문 앞에서 들려오는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 은혜는 지금도 살아 움직인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당신의 삶에서 오랫동안 '미문 앞'에 앉아 있었던 자리가 있다면, 그것은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그 자리에서 무엇이 당신을 일으켰습니까?

2. 회복 이후에도 찬송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3.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오늘 나의 일상에서 어떤 권위와 능력으로 작동하고 있습니까?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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