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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5장 19절 칼럼 - 노래가 삶이 될 때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노래는 인간의 가장 오래된 언어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을 소리에 담고, 소리로 다 할 수 없는 것을 침묵에 담는다. 기쁠 때도 노래하고, 슬플 때도 노래하며,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흥얼거리는 것이 인간이다. 그렇다면 바울이 에베소의 성도들에게 "노래하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단순히 찬양 시간을 충실히 하라는 뜻이었을까?

헬라어 원문에서 바울은 세 가지 노래를 구분한다. '시'(프살모스, ψαλμός / 프살모스)는 악기를 곁들인 예배 시편을, '찬송'(휨노스, ὕμνος / 휨노스)은 하나님을 향한 찬양시를, '신령한 노래'(오데 프뉴마티케, ᾠδὴ πνευματική / 오데 프뉴마티케)는 성령의 감동으로 빚어지는 자발적 고백을 가리킨다. 세 가지 모두를 포괄하라는 말은, 형식화된 예배만이 아니라 삶 전체가 노래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표현은 "서로 화답하며"라는 구절이다. 노래는 혼자 부르는 독창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 주고받는 대화다. 공동체 안에서 내가 지쳐 소리를 잃을 때, 옆 사람의 노래가 나를 일으킨다. 신앙은 본래 이런 구조다. 내 믿음이 흔들릴 때 공동체의 고백이 나를 붙잡고, 내 기쁨이 넘칠 때 그것이 다시 이웃에게 흘러간다.

그러나 바울은 한 가지 더 덧붙인다.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마음(카르디아, καρδία / 카르디아)은 히브리적 사유에서 인격의 중심, 의지와 감정과 지성이 만나는 자리다. 아무리 훌륭한 성가대의 하모니도, 마음이 빠진 노래는 공허한 소음에 불과하다. 반대로 떨리는 목소리라도 마음에서 우러난 고백은 하늘을 움직인다.

결국 이 구절이 우리에게 묻는 것은 이것이다. "당신의 일상은 어떤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까?" 예배당 안에서만 찬송하고, 문을 나서면 불평과 원망의 곡조로 돌아간다면 우리의 노래는 반쪽이다. 바울이 꿈꾼 신앙 공동체는 예배당 밖에서도 삶의 결이 찬송으로 직조된 사람들이었다. 월요일 아침의 출근길, 반복되는 일상의 한가운데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감사와 경이가 바로 "신령한 노래"다.

노래는 외워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면서 배우는 것이다. 고난의 계절을 지나며 탄식의 가락을 익히고, 은혜의 날에 감사의 선율을 덧입히며, 성도는 한 소절씩 자신의 신앙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그 노래가 모여 공동체의 합창이 되고, 그 합창이 세상을 향한 가장 아름다운 증언이 된다. 오늘 당신의 마음 안에는 어떤 노래가 흐르고 있는가.

칼럼에 대한 질문:

1. 나의 일상에서 '마음으로 드리는 찬송'과 단순히 입술로만 하는 노래를 구분해 본다면, 지금 나는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2.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의 신앙의 노래가 내 믿음을 붙잡아 준 경험이 있는가? 또 나의 고백이 누군가를 일으켰던 순간이 있는가?

3. 월요일의 삶, 즉 예배당 밖의 일상 속에서 '신령한 노래'를 살아내기 위해 내가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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