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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37장 14절 칼럼 - 마른 뼈에 부는 바람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토에 거주하게 하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루었음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봄이 되면 앙상하게 말라 있던 나뭇가지들이 다시 새순을 틔운다. 아무 생명도 없는 것처럼 보이던 가지 끝에서 연초록 잎이 돋아날 때, 사람들은 자연의 신비 앞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곤 한다. 에스겔 37장의 말씀은 바로 그 봄날의 기적을 훨씬 뛰어넘는 장면을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에스겔은 지금으로부터 약 2,600년 전,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이국 땅에 있었다.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졌고, 나라는 사라졌으며, 백성의 마음은 "우리의 뼈가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겔 37:11)라고 탄식하는 형편이었다. 그야말로 골짜기에 가득한 마른 뼈 같은 절망이었다. 오늘날에도 삶이 무너진 자리에서, 관계가 끊어진 자리에서, 꿈이 사라진 자리에서 같은 탄식을 내뱉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마른 뼈들을 향해 바람을 부르신다. 히브리어로 *루아흐*(רוּחַ)는 '바람', '숨결', '영(靈)' 세 가지 의미를 동시에 품고 있는 단어다. 하나님의 영이 곧 생명의 숨결이요, 세상을 새롭게 하는 바람이라는 뜻이다. 아무리 메마르고 부서진 인생이라 해도, *루아흐*가 임하면 살아난다는 것이 이 말씀의 핵심 선언이다.

14절의 약속은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니다. "내가 … 말하고 이루었음을 너희가 알리라"는 선언은 하나님의 말씀이 현실을 창조하는 능력임을 못 박는다. 헬라어 성경에서 이 동사는 '라레오'(λαλέω, 랄레오)와 '포이에오'(ποιέω, 포이에오), 즉 말하심과 행하심이 분리되지 않는 한 행위로 묶여 있다. 하나님은 약속하시고 그냥 잊으시는 분이 아니다. 말씀이 곧 사건이다.

이 진리는 개인의 영역을 넘어 공동체 전체로 확장된다. 에스겔이 본 환상에서 뼈들은 각각 흩어진 채로 살아난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큰 군대를 이루었다. 오늘의 교회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령의 생기를 받아 살아나되,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서로를 붙들고 세워 주는 공동체로 일어서는 것이 하나님의 그림이다.

마른 뼈 같은 시절을 지나고 있는가. 포기하고 싶은 순간,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루아흐*는 멈추지 않는다. 그분은 지금도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며, "살아나라"고 말씀하신다.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것이 절망의 골짜기를 지나는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이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당신의 삶에서 '마른 뼈 같은 시절'이 있었다면 언제였습니까? 그 시간을 어떻게 지나왔습니까?

2. 하나님의 *루아흐*(영·숨결·바람)가 나의 일상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역사하고 있다고 느끼십니까?

3. 에스겔의 환상처럼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세워 준 경험이 있습니까? 그 경험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습니까?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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