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린도전서 1장 10절 칼럼 - 하나 됨의 능력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면하노니 모두 같은 말을 하고 너희 중에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고린도 교회는 화려한 항구도시 고린도에 세워진 교회였다. 번영과 다양성이 교차하는 그 도시처럼, 교회 안에도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 그런데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때, 교회는 이미 균열이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하며 파벌을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바울은 그 소식을 듣고 단호하게 권면한다. 그가 사용한 헬라어 단어 "파라칼로(παρακαλῶ, 파라칼로)"는 단순한 요청이 아니다. 깊은 애정과 권위가 담긴 간곡한 호소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아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호소한다. 분열된 공동체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이름은 오직 하나뿐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같은 말을 하라"는 권면은 단순히 말투를 맞추라는 뜻이 아니다. 헬라어 원문의 "토 아우토 레게테(τὸ αὐτὸ λέγητε)"는 같은 고백, 같은 신앙의 언어를 가지라는 의미다. 교회의 언어는 세상의 언어가 아니라 복음의 언어여야 한다. 우리가 나누는 말 한 마디가 공동체를 세우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한다.
바울이 강조한 "같은 마음과 같은 뜻"은 획일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은사와 배경을 가진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목표, 하나의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마치 오케스트라가 각기 다른 악기로 하나의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내듯이, 교회의 다양성은 분열의 원인이 아니라 하나 됨의 풍성함이 될 수 있다.
오늘날 교회도 고린도 교회의 유혹 앞에 서 있다. 신학적 견해 차이, 세대 간의 갈등, 사역 방향을 두고 벌어지는 다툼들. 그 안에서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내가 옳다'는 주장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정체성이다. 연합은 타협이 아니라 십자가 앞에 함께 무릎을 꿇는 것에서 시작된다.
진주충만교회가 꿈꾸는 공동체도 이 말씀 위에 서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이름 아래 같은 고백, 같은 방향, 같은 사랑으로 하나 되는 교회. 분열의 시대에 교회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증거는 바로 그 하나 됨이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나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하나 됨'을 위해 어떤 말과 태도를 선택하고 있는가?
2. 내가 무의식중에 만들거나 가담하고 있는 교회 내 '파벌'이나 편 가르기는 없는가?
3. '같은 마음과 같은 뜻'이란 획일성과 어떻게 다른가? 나는 그 차이를 삶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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